2009년 06월 09일
무의식의 영역, 의식의 영역.
전 뭐 기본적으로는 노출패션에 대해 적대감은 없지만..(그저 감사할 뿐..)
버스에 앉아서 살짝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배꼽티 입은 여자에게 변태로 몰린다거나, 핸폰게임 중인데 갑자기 다가와서는 몰카 지우라고 항의하거나 기타등등 기타등등.. 을 몇번 겪은 일이 있는 산증인 1인으로써-_-;; 떡밥을 물어야 할거 같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요..;;
논쟁들을 주욱 보면서, 웬지 무의식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무의식은 말그대로 의식의 영역에서는 인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의식은 숨겨진 속마음이나 깊게 감추고 있는 생각 따위가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든 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면 그건 더이상 무의식 영역의 것이 아닌, 무의식의 것이 전의식을 통해 의식의 변환 작용을 거쳐 영역으로 표출된 것이죠. 따라서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무의식적인 기제에 들어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의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당사자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수 있다는 거죠.
"의식은 무의식의 것, 혹은 미지의 것에 대해 늘 저항한다" - C.G. Jung
2. 무의식은 의식의 전단계가 아닙니다. 무의식은 의식과는 약간 별개의 존재입니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무의식이 가공과정을 거쳐 의식이 되는, 마치 야채와 고기(무의식)를 다듬고 삶아서(왜곡/변환작용) 스튜(의식)를 만드는 식의 설명으로는 무의식과 의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의식에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심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의식에 영향을 미치냐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론 무의식적 심상들은 대부분, 언제나 표출되려는 성향을 보이고, 의식이 그것을 누르고 있긴 하지만 말이죠. 따라서 의식적인 행동들이 무의식적인 심상에 의해 정당화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자의 무의식 속에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라는 게 있다고 해도, "그래서 쳐다보는 건 정당하다" 라는 결론은 이끌어질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3. 무의식은 애초에 신경증 환자의 치료를 위해 등장한 개념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여러 신경증, 히스테리 증상들의 원인을 찾고자 환자의 꿈, 실수 등을 분석했더니 잊어버린 과거의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에 쌓여 저런 증상들을 유발시킨다는 걸 알아냈죠. 이런 정신의학 분야가 없었다면 무의식이란 개념도 나올 이유가 없었겠죠. 무의식의 심상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서 뭔가를 하게 되면 정신분열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에 융은 나름대로 무의식을 발전시켜서 태초부터 인류에게 쌓여오는 집단무의식 개념을 만들기도 했고요.
지금 "진화심리학"이라며 논쟁이 되는 무의식은 이 집단무의식이 아닐까 하네요. 괜히 진화심리학을 꺼낼 필요가 없는 건데 말이죠. 근데 집단무의식에 쌓이는 것들은 "원형"이며, 프로이트가 "고대의 잔존물"이라고 부른 것들입니다. 근데 문제는 이 원형 개념은 어떤 명확한 이미지나 모티프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 무의식의 내용을 어떻게 확인하냐? 괜히 학자들이 꿈이나 말실수나 무심코 지나치는 조그마한 행동들을 다양한 상징체계와 정신방어기제를 동원해가며 책 한권에 걸쳐가며 분석하는 게 아닙니다. 무의식의 내용을 어떤 전문적인 분석과정 없이 스스로 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며, 무의식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죠.
"원형이라는 용어는 종종, 어떤 명확한 신화적인 이미지나 모티프를 뜻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신화적인 이미지나 모티프들은 의식적인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변화하기 쉬운 표상이 유전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우스운 것이다." <무의식 분석>. C.G. Jung, 선영사, 1986
뭐 신화 얘기는 그냥 넘어가고, 여하튼 "남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라는 것 역시 의식적 표상이며, 무의식적인 게 아니라는 말이죠. 무의식에 남는 원형적인 것을 보자면 생존욕구나 우월감의 욕구 같은 원형적인 욕구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설명이 가능은 할 겁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과거, 여성의 지위가 그 여성을 선택한 남성의 힘과 권위에 따라 좌우되는 시대가 있었다고 치면, 그리고 좀더 우수한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 자신의 지위향상에 절대적인 변수로 작용했고, 이 유혹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패션이었다면, 좋은 패션을 추구하는 것은 남성을 유혹함으로써 자신의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일이라는 가설이죠. 근데 뭐 어쨌든 파고든 최종 결론은 지위향상과 우월감이네요. (근데 이런 분석도 무의식을 분석한 건 아니라는 건 이미 아시겠죠? 무의식 분석으로 넘어가면 패션으로 표현되는 장식들을 각 상징체계로 해석하여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같은 논리로, 무의식을 논하는 사람에게 의식 영역에서 "그런거 아니다!" 라고 외쳐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무의식의 심상을 의식이 그대로 인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위에 이미 이야기했죠?
요약하자면
의식 영역에서의 일들을 논하는 데 무의식적 심상을 들이미는 일(혹은 그 반대의 일)은 쓸모없는 일이다.
"무의식적 욕구"가 아무런 비판없이 "정당한 욕구"로 바뀔 수는 없다.
의식의 영역과 무의식의 영역은 애초에 다른 영역입니다. 무슨 신경증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의식적인 행동을 무의식을 들먹여가며 해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의식적인 기제를 내세워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무의식에 그런 내용이 있다손 쳐도 그게 뭐 어쨌다는건지..
ps. 뭐 본문과는 크게 상관없지만 질문 하나 해보죠. 무의식적 욕구는 "사회적으로" 정당합니까?
ps2. 근데 쓰고보니 아무래도 쓸데없는 뻘글같..;;
# by | 2009/06/09 22:13 | 트랙백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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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신경불안도 아니고 정신이상도 아닌데 그런 이론을 들이대는건 좀 그랬...
....설사 보이고 싶어 입었다 쳐도, 그게 치료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참. 근데 여성 노출증(Exhibitionism Disorder) 환자의 심리가 저렇긴 해요. 일부 노출보다는 전신 노출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이런 환자들은 정신치료가 필요하지요 (..)
이런 정신질환 케이스와 일반적인 여성들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생각하는 것도 참..;;
전공책이라도 다시 뒤적거려야 할 듯 ㅜㅜ
워낙에 학교를 놀러다녀서 그나마도 제대로 기억 못하지만요 :D
워낙에 기초밖에 안배웠고, 그나마도 수업을 제대로 안들었으니 번데기라고 하기에는 참 많이 뭔가 거시기 합니다. 거기다 4년동안 손 놓고 살아서 이제는 백지.ㅋㅋㅋ
어쨌거나 저도 그냥 감사할뿐.....
저도 뭐 그냥 감사..-ㅂ-;
잘 읽었습니다^^.
이런 면에선 비슷한 부분이 많을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