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할 때 좋은 차를 끌고 나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

난 소개팅을 그리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여태 한 6-7번? 게다가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_-;; 별로 꺼내고 싶은 주제는 아니긴 한데.

근데 솔직히 남자 차나 연봉 보는 여자들 많다는 건 사실 아닌가. 인정할 건 인정하자. 굳이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없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통계조사라도 해보지 않은 이상 비율적인 건 모르는 거고, 또 진짜 그런 거 신경 안쓴다던 사람도 막상 때 되면 엄청 따지기도 하고, 원래 무지 따지던 사람이 정작 결혼할 때는 그런거랑 전혀 관계없이 상대를 고르기도 한다.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소개팅 경험을 돌아봐도 차 있냐는 질문은 다들 하더라. 지하철 타고 왔다는 말에 바로 얼굴이 굳거나 표정이 바뀌던 여자도 몇 있었고..(아니 그럼 주말에 동부간선로를 타고 강남까지 차를 몰고 가는 미친 짓을 하기라도 바라는 건가 -_-;; 지하철 타면 한시간 걸릴 거리를 괜히 차끌고 가서 2-3시간 걸리고 싶지는 않거든.)

근데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따지고보면 이 사실은 공론화할 이유가 별로 없다. 정보공유를 하려는 것인가, 문제제기를 하려는 것인가? 문제제기는 대안을 찾을 수 있을 때나 하는 것이다. 모든 여자들을 대상으로 사상검증이라도 할 텐가. 막상 그렇게 한다고 치면, 뭐가 바뀔 것 같은가. 또 아예 여자를 안 만나고 살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게다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 굳이 공유할 필요도 없는 정보이다.

그냥 원래 세상이 그런 거다. 고대로부터 언제나 여성들은 남성을 고르는 데 신중했고, 이 신중함에는 언제나 남성의 '능력'을 재는 것이 포함되었다. 시대마다, 세대마다 이 능력의 개념이나 정도가 달라지기는 할 지언정, 큰 틀은 그대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력이 곧 힘이고, 연봉이나 집, 차 같은 건 그대로 그 사람의 재력(물론 집안도 포함해서)을 재는 척도로 기능하기 마련.

관점에 따라 문제라고 지적할 수는 있을 지언정, 어떤 대안이나 해결책은 별로 없어보인다.


ps. 그렇다고, 그냥 그런 여자 만나지 말라는 말만 하기에는, 이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세상엔 여자가 희귀하기 때문이다. (...)

by highseek | 2012/04/30 00:48 | 트랙백(1) | 덧글(24)

원시시대와 사냥감

개콘 : 기다려

언제나 그렇듯 원글과 큰 관계는 없다. 다만 원시시대의 사냥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딴소리.

인류사회에 농경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후빙기가 시작된 기원전 약 10000 년 정도, 즉 신석기 시대 즈음에 발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중론이다.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인 구석기 시대에는 물론이요,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 역시 지역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으나 사냥은 중요한 생활수단이었던 것은 자명하다.

한꺼번에 많은 들소를 사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낭떠러지로 들소떼를 유인하여 아래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기원전 3만-1만년 경 유럽의 들소 평원에서도 사용되었던 방법이다. 또한, 매머드 사냥에도 비슷한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금속으로 된 창이나 활 등의 무기가 없던 원시인들은 직접적인 공격을 해서 사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몬타나 주 블랙풋 족의 사냥을 보면, 들소를 함정으로 몰기 전날 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사의 의식이 시작된다. 또 사냥 당일에는 주술사들이 들소의 머리로 만든 두건을 쓰고 들소 가죽 옷을 입고 들소떼에게 접근한다. 다른 사람들은 미리 Y 자 형태의 바위숲 뒤에 매복해 있고, 주술사들이 들소들의 시선을 끌고 들소들이 따라오게 만들면서, 사람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으로 점차 유인한다. 마침내 바위숲 입구를 지나 완전히 안으로 들어오면, 숨어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무릎 덮개를 흔들어댄다. 제일 뒤의 들소가 놀라서 들소들 사이로 뛰어들면, 들소들은 일제히 절벽 쪽으로 달려간다.

블랙풋 족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에 동물들이 갑자기 이런 식의 유인작전에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낭떠러지로 몰린 동물들이 떨어지지 않고, 좌우를 살피며 경사면을 따라 안전하게 내려오는 통에 사냥이 불가능해져서,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나갔다가, 한 떼의 들소를 보고 이렇게 소리친다. "그대들이 그 밑으로 뛰어내린다면 나는 그대들 가운데 하나와 결혼할 것이다"

들소들은 그 말을 듣고 낭떠러지로 와서 차례대로 밑으로 뛰어내렸고, 황소 하나가 여자의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와 결혼해달라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결혼하겠다고 외쳤던 여자는 애초에 진심이 아니라 장난삼아 외친 것 뿐이었고, 크게 놀라며 뿌리쳤으나 결국 황소에게 끌려 절벽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 덕분(?)에 들소들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나, 여자의 아버지는 활과 화살통을 들고 딸을 구하러 떠난다. 갖가지 모험 끝에 딸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였으나, 황소의 발굽에 밟혀 죽고 만다.

통곡하는 여자를 보고 황소는 동정심에 여자에게 기회를 준다며, 아버지를 되살리면 돌려보내주겠다고 한다. 여자는 이 말을 듣고 까치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의 살점과 뼛조각을 모아 자신의 옷으로 덮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리고 옷을 치우니 아버지가 되살아난다. 황소는 이 장면을 보고 여자를 보내주면서, 식용으로 살해된 들소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주술적 수단(춤과 노래)을 가르쳐준다.

아버지와 딸은 마을로 돌아와 회의를 열고 젊은이들을 모아 황소의 춤과 노래를 가르쳐준다. 이것이 바로 이쿤우카치 라고 불리는 블랙풋 족의 남성 결사 조직의 탄생 경위이다. 이 조직은 블랙풋 족의 전통생활을 영위하던 시기,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이런 식의 신화는 남부 프랑스의 트루아 프레르 사원-동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동굴의 벽화에는 들소 춤을 추는 사람 그림이 그려져있고, 앞에 설명한 블랙풋족 인디언 전설에 등장할 법한 제의용 복장을 입고있다. 이 동굴 근처에 있는 튀크 도두베르 동굴에서도 들소와 들소 춤을 추는 사람의 발자국이 묘사된 암각화가 있는데, 춤추는 사람은 들소를 모방하여 발꿈치로 춤을 춘다.

로셀의 비너스로 알려진 유명한 구석기시대 여신상도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가슴과 엉덩이가 매우 큰 이 여신상은, 사냥 의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으로는 들소 뿔을 들고, 왼손은 튀어나온 배를 만진다. 이 여신상은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동굴에는 창을 던지는 자세의 남성상, 여성 생식기 모습을 새겨넣은 조각, 출산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여인상 등등이 같이 발견되었다.

여신상의 손에 들린 들소 뿔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 장소는 사냥 의례와 관련된 들소와 인간과의 계약에 관련된 성소였을 것이다. 기원전 3만년 전의 구석기시대, 사냥은 단순히 동물을 잡는 행위가 아닌, 동물과 인간과의 계약이자 의식이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생득적 방출 기제가 보다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에, 하나의 집단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종종 그려진다. 위 블랙풋 족 전설에서도 황소가 등장하는데, 이 황소는 들소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집단 영혼을 표상한다. 들소들이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인, 즉 집단 영혼의 의지이다. 들소의 육신은 자연의 주술적 질서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며, 따라서 블랙풋 족에게 있어 들소 고기는 들소의 집단 영혼의 자발적 선물이다. 들소를 사냥하는 것은 들소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신을 식량으로 내어주는 들소의 자발적인 희생에 따른 것이다.

이후 춤과 제의, 즉 주술을 통해 들소의 본질-영혼은 다시 살아나게 되므로, 들소들은 그들의 육체만을 내어줬을 뿐,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사냥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하나의 성스럽고 거대한 희생 제의이다. 

카리보우 에스키모의 사먼들은 동물의 수호여신 핑가(Pinga)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핑가는 동물의 영혼을 돌보고 있으며, 너무 많은 동물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프로베니우스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다가 식량이 부족해지자 피그미족 사냥꾼에게 영양을 한 마리 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부탁한 프로베니우스의 기대와는 다르게, 사냥꾼들은 놀란 얼굴로 쳐다보더니 준비가 되지 않아 안된다고 했다. 오랫동안 입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다음날 사냥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다음 날 사냥꾼들은 해뜨기 전에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데려왔다. 언덕으로 올라가 남자들은 땅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고,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사슴 그림과 도형을 그린 뒤 남녀 한 쌍이서 주문과 기도를 읊었다. 해가 뜨자 여자는 태양을 잡으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고 알 수 없는 주문과 함께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모래 위의 그림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숲 속으로 사라지자, 여자는 또 큰 소리를 지르고 계속 서 있었다고 한다.

이후 남자들이 수사슴을 한 마리 잡아왔는데, 털 한 묶음과 피 한 병을 뽑아 아까의 그 언덕으로 올라갔다. 모래에 그렸던 사슴 그림에 털과 피를 뿌리고 그림 위에 꽂힌 화살을 뽑고 그림을 지웠다. 이런 의식을 하지 않는다면 사슴의 피는 파괴된다고 한다.

이런 식의 의례와 이데올로기는 허드슨만의 툰드라나 콩고의 정글 지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에스키모들 역시 순록을 살해한 다음에는 반드시 피와 내장을 덮어주어야만 한다고 한다. 그래야 피의 복수를 받지 않고, 그 생명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냥꾼은 동물을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동기에서 죽인 것이 아니다. 위대한 정령, 자연의 규칙에 따라 살해한 것이고, 이렇게 죽은 동물은 자연 속에서 되살아난다.

프랑스 남부의 도르도뉴 지방에 있는 구석기시대 동굴들에는 석기시대의 사냥-주술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동굴 벽화들이 있다. 새의 모습을 한 가면을 쓰고 황홀감에 사로잡혀 발기한 성기를 드러낸 샤먼의 앞에는 창에 찔린 거대한 들소가 있고, 이 샤먼의 뒤에는 배설하면서 걸어가는 듯한 커다란 코뿔소가 그려져있다.

사하라-아틀라스 산맥의 크사르 아마르에 있는 바위벽에 그려진 후기 구석기 시대 벽화를 보면, 한 사람이 들소 앞에서 팔을 들고 있다. 리비아의 남서부에 있는 페잔에서 발견된 그림에선, 부부 한 쌍이 황소 앞에서 춤을 춘다. 누비아 사막에서 발견된 그림에서는 세 사람이 큰 숫양 앞에서 팔을 들고 있다. 동물을 사냥한다는 것은, 동물과의 계약을 통해 동물의 주인-자연에게 희생 제의를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그림에서는 주로 동물은 세심하게 그려져있고, 인간은 대충 그려진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그림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동물의 성화(consecration)이다. 이런 그림들은 앞서 설명한 블랙풋족의 의례와 같은, 사냥-주술과 관련되어 있다.

동굴 속 사냥 그림들 속에 있는 동물들은 다른 동물 위에 겹쳐 그려지거나, 모습이 변형된 형태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그림들은 대부분 예술적인 목적이나 실제의 기록 목적이라기보다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그려진다.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들 때문에,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다시 그려져왔던 것이다.

이런 동굴들은 주로 깊고, 미로같은 구조를 지녔으며, 주거지로 쓰이기보다는 일종의 성소로 쓰였다. 이는 아란다 부족의 남성용 춤마당과 기능이 비슷하다.

구석기시대의 여성상들은 대체로 뚱뚱하며 특히 가슴과 엉덩이가 발달해있다. 이는 상징적인 의도를 가지고 강조된 것인데, 이것은 미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신적 힘의 상징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이미 여성의 몸이 신성한 힘의 원천으로 숭배되었으며, 이 신비를 기리기 위한 의례 체계가 확립되었다.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남성상들이 주술적 존재임을 암시하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변형된 신체를 가지는 것과 달리, 여성상들은 벌거벗은 상태로 그냥 서 있다. 시베리아의 오스티아크족, 야쿠트족, 골디족 등은 나무로 여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는데, 사냥하러 떠날 때는 집을 여신상에게 부탁하며, 사냥에서 돌아오면 고기의 좋은 부분을 귀리와 함께 바치면서 기도한다. 이러한 관념은 여성, 특히 임신 기간의 여성을 강력한 주술적 힘의 원천으로 보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관념을 가진 원시인 사회에서, 남성이 사냥을 해서 가져다주며 과연 '으스댈'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by highseek | 2012/04/25 23:29 | 신화, 설화, 전설 | 트랙백 | 덧글(0)

성녀와 창녀

창녀는 왜 경멸 당하는 것일까?

'신전에서 몸을파는 신성한 창녀' 는 일반적인 의미의 창녀와는 구별해야 한다. 이들은 성적 쾌락을 제공하는 의미에서의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신과의 신성한 결합을 제공하여 신의 축복(?)을 내린다는 개념으로, 신과 인간의 연결점 역할을 수행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들은 창녀가 아니라 여사제이며, 당시 신전에서 이루어지던 성교는 단순한 남녀의 교접행위가 아닌, 여성-사제라는 매개체를 빌어 신과의 합일을 이루는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이러한 종교적인 성행위는 신과의 합일 뿐 아니라, 신의 재생에도 필수적인 것이었다. 여사제에게 씨를 뿌리는 것은 곧 신을 잉태하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신과 함께 세상을 재창조하는 의미이다. 신의 부활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다산제의적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바빌론에서는 이런 신성한 매춘을 할 수 있는 여사제 집단이 별도로 존재했으며, 이들은 제단과 성소를 마련하고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사람과 정해진 행위를 수행했다. 마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듯이. 수메르에서는 춘분에 행해지는 연중행사 때, 이난나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가 두무지를 상징하는 젊은 남자를 택해 공개적으로 성교를 함으로써, 두무지와 이난나의 성스러운 결합을 재현했다.

이런 식의 공개적인 성교는 원시문화에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남뉴기니아의 마린드-아민 족이나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처녀신 제의, 오스트레일리아 아란다 부족의 성인식-혼례 의 예를 볼 때 제의적인 '특별한 성교'는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의 남녀는 인간으로서의 남녀라기보다는 각각 여신과 남신을 표상하게 된다.

만약 창녀라는 직업이 고대 여사제들의 '성스러운 창녀'에서 출발한 개념이라고 한다면, 창녀라는 직업은 여성의 상품화가 아닌 여성의 신비화 및 성(聖)격화에서 출발한다고 보아야 한다. 고대의 남성들은 '여성'이라는 성스러움을 통해서만이 신에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by highseek | 2012/03/30 17:09 | 신화, 설화, 전설 | 트랙백 | 덧글(18)

누리꾼들이 헷갈리는 맞춤법이라는데


http://news.nate.com/view/20111123n09002


조금 철지난 기사이긴 하다.

그런데 보다가 하나 궁금한 것이


과연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저 '금새' 라는 단어를 보고


이거랑


이거중에

어느 걸 떠올렸을까?

...

by highseek | 2012/03/10 23:01 | 트랙백 | 덧글(15)

업소


- 요새 업소녀 구분법으로 말이 많은가보다. 뭐가 됐든 단순히 드러나는 특징 몇 가지만으로 사람을 구분하려 드는 것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되는 것 같다. 지나가는 저 사람이 뭔 생각을 하고 뭔 인생을 사는지 대체 어떻게 아나. 정작 내 인생도 제대로 모르겠는데..

- 소위 업소라는 데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런 데 가면 뭔가 동정받는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고, 이 여자가 겉으로는 싹싹하게 굴어도 속으로는 나를 경멸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스스로 더욱 비참해지는 느낌이라 주변에서 가자고 해도 웬지 꺼리게 된다. 물론 가자는 사람도 없지만. 내돈 내고 모멸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 근데 업소녀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지? 그거 구분해서 뭐에 쓰려고. 설령 여자친구가 과거 업소를 다녔다고 치자. 그럼 그런가보지.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인가.

by highseek | 2012/03/10 00:22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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